백신애 낙오

한국문학 2020. 8. 15. 18:48

낙오              백신애

 

“나는 간단다.”
정희는 이 한마디 말을 내놓으려고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아 왔다.
“응?”
예측한 바와 틀림없이 경순의 커다란 두 눈은 복잡한 표정으로 휘둥그래졌
다.
“나는 가게 된단 말이야.”
“공연히 그러지?”
경순이는 벌써 정희의 하려는 말을 어렴풋이 알아채었다.
“무엇이 공연히란 말이야, 정말이다.”
“미친 계집애.”
“정말이다. 보려므나.”
정희는 경순의 이마를 꾹 찌르며 얼굴이 빨개가지고 마치 경순이가 못 가
게나 하는 듯이 부득부득 간다는 것이 정말이라고 우겨대었다.
“글쎄 정말이면 축하하게. 너는 참 좋겠구나.”
“좋기는 무엇이 좋아.”
경순이는 미끄럼 타다가 못에 걸린 것 같이 정희의 태도에 저으기 뜨끔 하
고 맞이는 것이 있었다.
“이제 와서 날 보고 할말이 없으니까 하는 수작이로구나.”
하고 경순이는 정희의 말이 조금 불쾌하였다. 그러나 이미 일이 이렇게 되
고 만 이때에 쓸데없는 농담만이라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입
을 다물어 버렸다.
“얘 좀 보게. 언제까지든지 거짓말만 하는 줄 아니? 오늘은 정말이란
다.”
“그러기에 축하한다는 것이 아니냐!”
경순이는 웃으며 말대꾸를 하면서도 정희의 독특한 성격을 알고 있느니만
큼 조금 불안하기도 하였다.
“금년 안에는 못가겠다고 생각했더니 이즈음 숙자가 간다기에 나도 그만
결심을 했단다.”
정희는 기쁜 듯이 밖의 사람들에게 들릴 것도 돌아보지 않고 떠들었다.
“공연히 시집가는 것이 좋으니까 그러지.”
“천만에. 나는 시집은 안 간다. 너도 헛걸음 한 줄 알어라.”
경순이는 정희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정희는 경순이 태도에 성이
났는지 벌떡 일어서서
그러면 같이 “ 가 보자. 내 말이 거짓말인가. 어서 가. 내게 따라만 와
봐!”
하며 경순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직까지 다 장난이거니 하고 믿은 경순이는
그대로 따라 일어섰다. 부엌에서 편육을 만들고 있던 정희의 어머니한테 물
건 사러 나간다는 핑계를 하고 그대로 대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내 정말을 할 터이니 놀라지 말어라. 그리고 이 비밀을 폭로시키
는 날이면 너는 죽는 것인 줄 알아라!”
“미친 수작 말아라.”
경순이는 정희의 을러대는 꼴이 우스웠다.
“아니, 정말이다. 나는 동경으로 갈 터이다.”
“…….”
“내일 밤이면 너와도 당분간 못 만나게 된다.”
“내일 밤?”
경순이는 어마어마하던 자기의 추측의 딱 들어맞은 것이 소스라치게 놀라
워 발길을 탁 멈추었다.
“무엇이 그렇게 놀라워?”
정희는 길가는 사람들이 놀라 돌아볼 만치 커다랗게 사나이 웃음을 웃는
것이었다.
“그것 정말이냐, 내일 밤에?”
“그럼 내일 밤은 왜 못 가는 밤인가.”
경순이는 정희의 이 대답을 듣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기
발하게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정희의 성격을 알고 있느니만큼 놀람은 불안
으로 변하였다.
“그래 너희 집에서 허락하였니?”
“멍청이야! 어째서 허락을 하겠니. 가만히 도망칠테야.”
정희의 말소리는 태연하였다. 그러나 경순이는 몸에 소름이 끼쳤다. 남이
야 죽든 살든 자기 고집만 세우면 그만이지! 하는 정희의 성격이 악한이나
만난 것 같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파혼을 했니?”
경순이는 겨우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파혼? 내가 언제 약혼을 했었나.”
“뭐야?”
꿋꿋하고 훌쩍 큰 정희의 어깨를 힘껏 잡아당겼다.
무슨 말을 그 따위로 “ 하니? 아무리 농담이라도 분수가 있단다. 너무 그
러면 나는 정말 네가 무섭구나.”
“무섭거든 달아나려무나.”
정희는 어깨를 뿌리치며 볼통하여졌다.
“정희야, 사람이 그래서는 못쓴다. 이렇게 도망을 할 판이었거든 왜 좀
더 전에 하지 못했니. 이렇게 일이 모두 결정된 뒤에 이러면 너의 부모가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되든 내가 무슨 관계야. 나는 내 맘대로만 하면 그만이지. 한번
골려주어야 다시는 이런 함부로의 짓을 하지 않지.”
아무리 말해봤자 들을 정희가 아닐 것을 경순이는 잘 알고 있었다.
경순이와 정희는 삼 년 간 A고을 보통학교 교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으므로
알게 된 동무였다. A고을은 경순에게 있어서는 고향에 가까웠고 정희의 고
향인 서울과는 천리의 먼 사이를 둔 곳이니만큼 나이는 비록 정희가 위이나
경순이가 형과 같이 앞을 서는 것이었다. 본래부터 고집이 센 정희는 동료
교원들 사이에서도 그리 화합하지 않고 생도들 사이에도 벌 잘 세우고 잘
때리고 한다고 평판이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순이와는 사이가 좋았다.
한 방에 기숙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정희의 성격을 잘 이해하는 경순이였
으므로 아직 한 번도 말다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무엇이든지 저질러 놓으면 뒷감당도 경순이가 제 일같이 처리
해 줄 뿐 아니라 학교에서 갔다 나오면 한 페이지라도 책을 읽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대로 월급한 따 먹는 교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차 앞날의
사회에 주초가 될 지금의 어린이들을 가르쳐 줄 자격이 없는 우리이다. 우
리를 지상의 지자(知者)로 믿고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중대한 이 의무
를 무책임하게 더럽혀서는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일개 소학교원으로 만족하지 말자.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시라도 놀지 말고 읽어두자.”
하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희는 이런 말은 귀 밖으로 들으며 반대도
않고 그렇다고 덥썩
“오냐 그렇게 하자.”
고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경순의 말이 마음에 못마땅해서 그런 것
이 아니라 남의 말에 술술이 따라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이었다. 그런고로
자기의 생각해 낸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비록 잘못인 줄 알았다 해
도 남의 충고는 한사코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 이 년을 채우고 나서는 그 동안 저금한 돈으로 동경으로 공부하
러 가자 하는 말에는 쾌히 대답은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그러리라’
고 결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경순이는 손꼽아 만 두 해만 되어
주기를 고대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기다리는 두 해가 거의 되어 오던 어
느 날 정희는 학교에서 먼저 돌아와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는 그날 학교에
서 나오며 사직원을 제출한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애타하는 경순
이를 뿌리치고 그 날 밤에 부랴 부랴 고향인 서울로 가 버린 것이었다.
학교 교장도 그 이튿날 아침에 비로소 사직원서를 보게 된 까닭에 사직하
는 이유를 들어볼 여가도 없었다. 경순이도 교장의 물음에 대답할 말이 없
었으므로 정희의 태도를 괘씸하게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시집을 가는 모양입니다.”
하고 돌발적인 정희의 태도의 결론을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결혼한다는 소
식은 좀처럼 듣기지 않았다.
“남에게 따르는 것을 싫어하는 성질이라 나하고 같이 그만두느니보다 나
보다 먼저 그만두어서 나중에 나를 저의 뒤를 따르게 하려는 생각이로구
나.”
하고 경순이는 ‘지금까지 둘이서 약속하고 고대하여 오던 두 해를 불과 한
달 남짓하면 이행할 것을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근 이 년이나 정들인 학교
와 동무를 몇 시간 사이에 집어던지고 가버리다니……. 그뿐이냐. 학기말
시험으로 한창 바쁠 때요 더구나 일 년 동안 담임하여 온 생도들을 진급도
시켜주지 않고 단지 동무와 같이 사직하지 않으려는 자기의 지지 않으려는
성격을 억제 못하여 이 따위 행동을 하다니……’하는 생각을 하면 경순이
는 자기와의 우정은 별 문제로 하고도 몹시 괘씸하였다.
그러나 경순이는 만 이 년이 꽉 찬 신학기가 왔어도 사직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늙은 부모와 직업이 없는 자기 오빠 부부의 형편이 당장에 교편을
집어던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또 한 해만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오빠가
취직하게 되면 일 년 이내에라도 그만두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정희에게 자기의 사정을 편지하며 몇 번이나 편지에 쓴 말이면서도 그때까
지 분명히는 모르는 정희의 사직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너는 마음이 약하다. 부모가 무엇이냐. 왜 용감하게 그만두지 못하느냐.
나는 곧 동경으로 가려 한다.”
는 편지가 왔다. 그러나 그 후 반 년이 지난 며칠 전까지도 동경 간다는
소식은 없었다.
아마도 경제가 허락 “ 않나 보다. 만일 이러다가 내가 먼저 동경으로 가게
되면 얼마나 답답해할까.”
하는 생각으로 남보다 먼저 하려고만 애를 쓰는 그에게 오히려 동경하고 싶
기까지 하였다. 그러는 중에
“오는 십일 월 십삼 일은 정희의 결혼날이다.”
라는 청첩 한 장이 학교 직원 일동에게로 왔다. 경순이는 일변 놀라면서도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정희는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 하더라도
그의 진정으로는 자기를 유일한 동무로 여기고 있으리라고 생각 되었으므로
학교에 일주일 휴가를 얻어가지고 결혼식일을 나흘 앞두고 상경하였던 것이
다. 결혼 준비를 거들기도 할 겸 처녀로서의 동무와 오래 이야기도 해 볼
겸 미리 상경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희의 집에 들어서자 정희는 생각보다 냉정하였다. 정희의 어머니
는 몹시 반가워하며 멀리서 학교를 쉬어가며까지 와 주는 정희를 치하하는
것이었다.
“축하한다.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
하고 먼저 정희의 손을 잡았다.
“몰라. 왜 왔니?”
정희는 웃지도 않고 무표정하였다. 자기의 결혼 청첩을 받고 천리의 먼 길
도 불구하고 달려온 그에게 하는 첫 말로는 너무나 냉정한 것이었다. 그러
나 경순이는
“성격도 못났다.”
고 생각하면 조금도 정희의 태도를 괘씸하게 여기지 않았다.
‘시집가는 것이 부끄러워 그러는 것이겠지. 동경에를 가지 못하는 것을
아직 분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하고 조금도 가슴에 끼지 않았다.
“그리지 말아. 나는 네 결혼식 구경을 왔단다.”
하며 트렁크 속에서 준비하여 온 기념품인 탁상시계를 내어 놓았다.
“이것이 뭐야, 쓸데없이.”
정희는 들어보지도 않고 도로 경순이에게 밀어 주었다.
“얘야, 내 처지에 좋은 것을 살 수 있니. 이것이라도 내 맘에서 보내는
선물이다.”
정희는 교원 노릇할 때 서로 함부로 쓰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경순이는
그 말이 반가웠다.
그 날 밤은 정답게 새웠다. 신랑은 스무 살이요, 부자의 아들인데 아직 중
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은 정희의 어머니에게 들었으나 정희에게 결혼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듣지 못하였다.
아마 아직 중학생이라니까 “ 정희 자신은 별로 반갑지 않은 모양이로구
나.”
하는 생각으로 구태여 정희에게 여러 말 묻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오늘 결혼 전날인 내일 밤에 동경으로 도망을 하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라
경순이는 놀라고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를 자꾸 가니?”
S동 골목쟁이로 휘어들자 입을 떼었다.
“잔말 말고 따라와 보라는데 그래.”
정희는 한 집으로 들어갔다.
“숙자 있수?”
방 안에서 숙자인 듯한 정희 동갑의 여인이 뛰어 나오며
“어서오!”
하며 경순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정희는 숙자라는 그 집 주인과 장난말을
해가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이것 좀 보아. 내 말이 거짓말인가!”
경순이는 방에 들어가려다가 문턱에 주춤하고 서서 방 안을 살폈다.
찬란한 무늬를 놓은 메린쓰 이불(夜具), 트렁크, 벽에는 드레스, 오─바,
모자 등이 우수수 걸려 있어 마치 그 방 안에만 봄바람이 불어 닥친 것 같
았다.
정희는 벽에 걸린 드레스를 벗겨 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젖가
슴을 드러내고
“한번 입을테니 스타일이 어떤가 보아.”
하며 설빔을 입는 어린이같이 명랑하게 웃었다. 경순이는 동무의 그 모양이
‘아직 철이 없다.’
고 여겨지므로 같이 웃어 버렸다.
“너 참 대담하구나. 그러면 정말이로구나.”
“그럼 그까짓 것, 나는 한번 한다면 기어이 해. 실행하고야 만단다. 너처
럼 고리탐식하게 교원 노릇만 하다가 갯놈 같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그냥 늙
어죽을 줄 아니.”
정희는 개선장군같이 드레스를 꿰어 입고 턱 버티고 섰다.
“어떠냐! 그만 너도 나하고 같이 도망치자꾸나.”
“…….”
경순이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희는 모자도 써 보고 외투도 입어 보고
난 다음에 이불을 꾸리고 숙자에게 내일 밤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 한 후 그
집을 나섰다.
경순이는 더 말해 보았자 소용 없음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고
결혼 준비에 급급한 그의 가정을 생각할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될
수 있는 데까지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생각하였다.
“동경에 가자고 한 것은 나도 너와 약속한 일이니까 더 말할 필요 없지만
장차 어떻게 할 계획이냐. 학비는 어떡하니.”
“그런 것이 다 ─ 걱정이냐. 동경에 가 보아야 알지. 돈이 없으면 어디
너더러 학비 달랄까봐 그러니?”
정희는 잡았던 경순의 손을 내어 던지듯이 놓으며 입을 삐죽하였다.
“너는 생각이 그밖에 들지 않니? 물론 장난의 말이겠지마는 나는 무척 섭
섭하다.”
경순이는 자기에게 대한 정희의 태도도 괘씸하거니와 자기 가정을 너무나
돌아보지 않는 대담한 행동이 미워졌다.
“결혼한 담에 차차 기회를 얻어서 공부하면 어떠냐. 너도 벌써 스무 살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너는 너보다 나이도 적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니?”
정희는 그제야 그 결혼에 반대하는 이유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니.”
“암만 그래도 듣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가만히 있었지.”
“그래도!”
“아냐. 이해 없는 인간들은 이렇게 골려 주어야 한단다.”
경순이는 입을 닫았다. 어떻게 말을 붙여 볼 나위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튿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나서 혼인 준비로 모인 친척들이 욱
덕이며 신랑의 칭찬을 한다. 신식 결혼식은 어떻다는 둥 하고 안방이 터질
것 같게 사람이 모여 앉아 있고 건너방에는 신랑집에서 보낸 물건을 구경하
느라고 젊은 여인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삼층장, 옷걸이, 이불장 등에 꽉
찬 비단옷을 일일이 들추어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신랑이 외동 아드님이라나요. 그래서 이렇게 혼수도 장하답니다. 새아씨
는 트레머리 하는 까닭에 비녀는 그만두라고 했지만 요사이같이 금비녀 값
이 비싼데도 금반지하고 금비녀, 금시계를 다 ─ 했답니다.”
하고 친척으로 정희의 형 되는 젊은 여인이 제 것 같이 자랑을 하는 것이었
다. 정희는 오늘밤에 도망을 하려는 사람 같지 않게 천연스럽게 앉아서 남
의 일을 구경하듯이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오전 열한 시, 하려는 결혼식장인 예배당에는 벌써 각색
물감 테이프 만국기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신부인 정희의 그림자는 사
라지고 말았다.
아래위로 뒤끓으며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신부를 찾고 헤매었으니 정각
열한 시는 사정없이 당하고 말았다.
신랑은 모 ─ 닝을 입고 들러리들과 많은 참례 손님들과 함께 무료하게 기
다린 지 한 시간이 넘어 지나도 신부 집에서는 개미 한 마리도 얼굴을 보이
지 않았다.
“나는 시집 안 갈거에요. 그리만 아세요.”
하고 늘 말하기는 하였으나‘시집가는 처녀의 의례히 하는 공통한 버릇에
불과하느니……’하고만 여겨 온 정희의 부모는 외면의 수치보다도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해 못 할 사실이라고 어리둥절하여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했
다.
경순이는 이미 일주일 휴가를 얻은 터이라 하루를 숙소에서 쉰 후 학교에
출근하였다. 직원실에 들어서자 동료 교원들은 경순에게 몰려오며 신문지를
치켜들고 법석을 했다.
“벌써 신문에까지 났나 보다!”
결혼식에 갔다 온 이야기를 무엇이라고 꾸며댈까 하고 생각하던 터이라 갑
자기 대답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연인이 있었던 거야.”
“연애꾼 없이 갑자기 그렇게 도망할 리가 있나.”
제각기 제가 젠 척 하기 쉬운 추측을 사실같이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알지도 못하고 떠들지 마세요. 정희는 참으로 용감한 여자라오. 꼭 연애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부모가 함부로 정한 결혼에 반대하는 것일까요. 남의
불행한 일이라면 거지가 떡이나 본 것 같이 떠들면서 조금도 그 사실을 이
해하려고 하지 않는 당신들과는 인간이 다르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
정과 용기가 눈 앞의 안일에 만족하는 당신들이나 나와 같은 무리들과는 레
벨이 틀립니다.”
경순이는 몹시 흥분하여지며 소리를 높여 한숨에 뱉어 던졌다.
“과연 그렇다. 정희와 같이 의지가 굳어야 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무엇이
든지 희생이 없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작으나 크나 남의 희생 없고
는 못 사는 것이다.”
하고 입 속에서 한탄하듯 속삭였다. 처음은 정희의 태도를 비난도 하였으나
지금 자기는 ‘여전히 가슴에 불평을 가득 품고도 큰 소리 한번 못하고 순
순히 향상 없는 생활을 계속하는 핏기 없는 인간이다’라고 느끼는 동시에
정희의 그림자는 훨씬 멀리 자기의 앞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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