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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추천14

강경애 부자 부자(父子) 강경애 “이애, 큰아부지 만나거든 쌀 가져 온 인사를 하여라. 잠잠하고 있지 말 고.” 저녁술을 놓고 나가는 아들의 뒷덜미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 다. 바위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잠잠히 나와 버리고 말았다. 사립문 밖을 나서는 길로 그는 홍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이나 무 슨 기별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났던 것이다. 홍철의 집까지 온 그는 한참 이나 주점주점하고 망설이다가 문안으로 들어서며 기침을 하였다. 뒤이어 방문이 열리며 내다보는 홍철의 아내는, “오십니까. 그런데 오늘도 무슨 기별이 없습니다그려.” 바위가 묻기 전에 앞질러 이런 걱정을 하며 어린애를 안고 나온다. “아무래도 무사치 않을 모양이에요. 그러기에 소식이 없지요 그만 내가 가볼까 하여요.” 바위는 언제나 .. 2020. 9. 18.
백신애 낙오 낙오 백신애 “나는 간단다.” 정희는 이 한마디 말을 내놓으려고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아 왔다. “응?” 예측한 바와 틀림없이 경순의 커다란 두 눈은 복잡한 표정으로 휘둥그래졌 다. “나는 가게 된단 말이야.” “공연히 그러지?” 경순이는 벌써 정희의 하려는 말을 어렴풋이 알아채었다. “무엇이 공연히란 말이야, 정말이다.” “미친 계집애.” “정말이다. 보려므나.” 정희는 경순의 이마를 꾹 찌르며 얼굴이 빨개가지고 마치 경순이가 못 가 게나 하는 듯이 부득부득 간다는 것이 정말이라고 우겨대었다. “글쎄 정말이면 축하하게. 너는 참 좋겠구나.” “좋기는 무엇이 좋아.” 경순이는 미끄럼 타다가 못에 걸린 것 같이 정희의 태도에 저으기 뜨끔 하 고 맞이는 것이 있었다. “이제 와서 날 보고 할말이 없으니까 하는.. 2020. 8. 15.
이상 날개 날개 이상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 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 석처럼 늘어 놓소. 가공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정신이 제멋대로 노는 사람)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받아들이는)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 2020. 7. 26.
김유정 연기 연기 김유정 눈 뜨곤 없드니 이불을 쓰면 가끔식 잘두 횡재한다. 공동변소에서 일을 마치고 엉거주침이 나오다 나는 벽께로 와서 눈이 휘둥 그랬다 . 아 이게 무에냐. 누리끼한 놈이 바루 눈이 부시게 번쩍버언쩍 손가 락을 펴들고 가만히 꼬옥 찔러보니 마치 갓굳은 엿조각처럼 쭌둑쭌둑이다 얘 이눔 참으로 수상하구나 설마 뒤깐기둥을 엿으로빚어놨을 리는 없을텐 데. 주머니칼을 끄내들고 한번 시험쪼로 쭈욱 나리어깎아보았다. 누런 덩어 리 한쪽이 어렵지 않게 뚝떨어진다. 그놈을 한테 뭉처가지고 그앞 댓돌에다 쓱 문태보니까 아 아 이게 황금이아닌가. 엉뚱한 누명으로 끌려가 욕을 보 든 이 황금. 어리다는, 이유로 연홍이에게 고랑땡을 먹든 이 황금. 누님에 게 그 구박을 다받아가며 그래도 얻어먹고 있는 이 황금 ── 다시.. 2020. 7. 21.
김유정 땡볕 땡볕 김유정 우람스레 생긴 덕순이는 바른팔로 왼편 소맷자락을 끌어다 콧등의 땀방울을 훑고는 통안 네거리에 와 다리를 딱 멈추었다. 더위에 익어 얼굴이 벌거니 사방을 둘러본다. 중복 허리 의 뜨거운 땡볕이라 길 가는 사람은 저편 처마 밑으로만 배앵뱅 돌고 있다. 지면은 번들번 들히 달아 자동차가 지날 적마다 숨이 탁 막힐 만치 무더운 먼지를 풍겨 놓는 것이다. 덕순이는 아무리 참아 보아도 자기가 길을 물어 좋을 만치 그렇게 여유 있는 얼굴이 보이 지 않음을 알자, 소맷자락으로 또 한번 땀을 훑어 본다. 그리고 거북한 표정으로 벙벙히 섰 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는 어린 깍쟁이에게 공손히 손짓을 한다. “얘! 대학병원을 어디루 가니?” “이리루 곧장 가세요!” 덕순이는 어린 깍쟁이가 턱으로 가리킨 대로 그 길.. 2020. 7. 6.
김유정 두포전 두포전 김유정 1. 난데없는 업둥이 (마나님 시점) 옛날 저 강원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강원도라 하면 산 많고 물이 깨끗한 산골입니다. 말하자면 험하고 끔찍끔찍한 산들이 줄레 줄레 어깨를 맞대고 그 사이로 맑은 샘은 곳곳이 흘러 있어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산 골입니다. 장수꼴이라는 조그마한 동리에 늙은 두 양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정직하여 남의 물건을 탐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새끼 한번 때려보 지 않었드니만치 그렇게 마음이 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웬 일인지 늘 가난합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그들 사이에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 면 오작이나 좋겠습니까. 참말이지 그들에게는 가난한것보다도 자식을 못가진 이것이 다 만 하나의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마나님이 신기한 꿈을 꾸었.. 2020.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