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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6

윤동주 달을 쏘다 달을 쏘다 윤동주 번거롭던 사위(四圍)가 잠잠해지고 시계 소리가 또렷하나 보니 밤은 저윽이 깊을 대로 깊은 모양이다. 보던 책자를 책상 머리에 밀어놓고 잠자리를 수습한 다음 잠옷을 걸치는 것이다. "딱"스위치 소리와 함께 전등을 끄고 창녘의 침대에 드러누우니 이 때까지 밖은 휘양찬 달 밤이었던 것을 감각치 못하였었다. 이것도 밝은 전등의 혜택이었을까. 나의 느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선창(船艙)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코마루, 입술, 이렇게 하얀 가슴에 여맨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 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 림은 한 .. 2020. 6. 2.
참회록 윤동주 참 회 록 - 윤동주 -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2020. 3. 22.
비 오는 밤 윤동주 비 오는 밤 윤동주 솨! 철석! 파도소리 문살에 부서져 잠 살포시 꿈이 흩어진다. 잠은 한낱 검은 고래떼처럼 살래어, 달랠 아무런 재주도 없다. 불을 밝혀 잠옷을 정성스리 여미는 삼경. 염원 동경의 땅 강남에 또 홍수질 것만 싶어, 바다의 향수보다 더 호젓해진다. 2020. 3. 21.
윤동주 무얼 먹고 사나 무얼 먹고 사나바닷가 사람물고기 잡아먹고 살고산골엣 사람감자 구워 먹고 살고별나라 사람무얼 먹고 사나. 2018. 7. 21.
윤동주 거리에서 거리에서달밤의 거리광풍(狂風)이 휘날리는북국(北國)의 거리도시(都市)의 진주(眞珠)전등(電燈)밑을 헤엄치는조그만 인어(人魚) 나,달과 전등에 비쳐한몸에 둘셋의 그림자,커졌다 작아졌다.괴로움의 거리회색(灰色)빛 밤거리를걷고 있는 이 마음선풍(旋風)이 일고 있네외로우면서도한 갈피 두 갈피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푸른 공상(空想)이높아졌다 낮아졌다. 2018. 7. 6.
윤동주 별헤는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별 헤는 밤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 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 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 케.. 2018.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