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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67

김소월 그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김소월 1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지금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는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 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달피 날저무는 갓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는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2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삼 년은 길어둔 독엣물도 찌었지마는 가면서 함께가자 하던 말씀은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 나무는 밑 그루를 꺾은 셈이요 새라면 두 죽지가 상한 셈이라 내 몸에 꽃필 날은 다시 없구나 밤마다 닭소리라 날이 첫 시면 당신의 넋맞이로 나가 볼 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에 걸리면 당신의 길신.. 2020. 10. 7.
강경애 부자 부자(父子) 강경애 “이애, 큰아부지 만나거든 쌀 가져 온 인사를 하여라. 잠잠하고 있지 말 고.” 저녁술을 놓고 나가는 아들의 뒷덜미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 다. 바위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잠잠히 나와 버리고 말았다. 사립문 밖을 나서는 길로 그는 홍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이나 무 슨 기별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났던 것이다. 홍철의 집까지 온 그는 한참 이나 주점주점하고 망설이다가 문안으로 들어서며 기침을 하였다. 뒤이어 방문이 열리며 내다보는 홍철의 아내는, “오십니까. 그런데 오늘도 무슨 기별이 없습니다그려.” 바위가 묻기 전에 앞질러 이런 걱정을 하며 어린애를 안고 나온다. “아무래도 무사치 않을 모양이에요. 그러기에 소식이 없지요 그만 내가 가볼까 하여요.” 바위는 언제나 .. 2020. 9. 18.
윤동주 바다 바다 윤동주 실어다 뿌리는 바람처럼 씨워타. 솔나무 가지마다 새침히 고개를 돌리어 뻐들어지고, 밀치고 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 씻고 구보로. 바다는 자꾸 섧어진다. 갈매기의 노래에.....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돌아가는 오늘의 바다여! 2020. 9. 9.
김소월 구름 구름 김소월 저기 저 구름을 잡아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캄한 저 구름을. 잡아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구만리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로 내리거든, 생각하라, 밤저녁, 내 눈물을. 2020. 8. 30.
김영랑 가늘한 내음 가늘한 내음 김영랑 내 가슴 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 해 고요히 지는 제 머언 산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 뜬 보랏빛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한 이를 정열에 정열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얼결에 여흰 봄 흐르는 마음 헛되이 찾으려 허덕이는 날 뻘 우에 처얼석 갯물이 놓이듯 얼컥 니이는 훗근한 내음 아 ! 훗근한 내음 내키다 마아는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오나니 수심 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산 허리에 슬리는 저녁 보랏빛 2020. 8. 23.
백신애 낙오 낙오 백신애 “나는 간단다.” 정희는 이 한마디 말을 내놓으려고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아 왔다. “응?” 예측한 바와 틀림없이 경순의 커다란 두 눈은 복잡한 표정으로 휘둥그래졌 다. “나는 가게 된단 말이야.” “공연히 그러지?” 경순이는 벌써 정희의 하려는 말을 어렴풋이 알아채었다. “무엇이 공연히란 말이야, 정말이다.” “미친 계집애.” “정말이다. 보려므나.” 정희는 경순의 이마를 꾹 찌르며 얼굴이 빨개가지고 마치 경순이가 못 가 게나 하는 듯이 부득부득 간다는 것이 정말이라고 우겨대었다. “글쎄 정말이면 축하하게. 너는 참 좋겠구나.” “좋기는 무엇이 좋아.” 경순이는 미끄럼 타다가 못에 걸린 것 같이 정희의 태도에 저으기 뜨끔 하 고 맞이는 것이 있었다. “이제 와서 날 보고 할말이 없으니까 하는.. 2020.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