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따는 콩밭         김유정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리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거츠로 황토 장벽으로 앞뒤좌우가 콕 막힌 좁직안 구뎅이. 흡사히 무덤 속
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브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
에 자욱하다.
고깽이는 뻔찔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히 나려쪼며
퍽 퍽 퍽 ─
이렇게 메떠러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하고 벽이 헐린다.
영식이는 일손을 놓고 소맷자락을 끌어당기어 얼골의 땀을 훌는다. 이놈의
줄이 언제나 잡힐는지 기가 찼다. 흙 한 줌을 집어 코밑에 바짝 드려대고
손가락으로 삿삿이 뒤저본다. 완연히 버력은 좀 변한 듯싶다. 그러나 불퉁
버력이 아주 다 풀린 것도 아니엇다. 말똥버력이라야 금이 온다는데 왜 이
리 안 나오는지.
고깽이를 다시 집어든다. 땅에 무릎을 꿇고 궁뎅이를 번쩍 든 채 식식어린
다. 고깽이는 무작정 내려찍는다.
바닥에서 물이 스미어 무릎팍이 흔건히 젖엇다. 굿 엎은 천판에서 흙 방울
은 나리며 목덜미로 굴러든다. 어떤 때에는 웃 벽의 한쪽이 떨어지며 등을
탕 때리고 부서진다.
그러나 그는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금을 캔다고 콩밭 하나를 다 잡
첫다. 약이 올라서 죽을 둥 살 둥, 눈이 뒤집힌 이 판이다. 손바닥에 침을
탁 뺏고 고깽이 자루를 한번 고처 잡드니 쉴 줄 모른다.
등 뒤에서는 흙 긁는 소리가 드윽드윽 난다. 아즉도 버력을 다 못 친 모
양. 이 자식이 일을 하나 시졸 하나. 남은 속이 바적 타는데 웬 뱃심이 이
리도 좋아.
영식이는 살기 띠인 시선으로 고개를 돌렷다. 암말 없이 수재를 노려본다.
그제야 꿈을꿈을 바지게에 흙을 담고 등에 메고 사다리를 올라간다.
굿이 풀리는지 벽이 우찔하엿다. 흙이 부서저 나린다. 전날이라면 이곳에
서 안해 한번 못 하고 생죽엄이나 안 할가 털끝까지 쭈뻣할 게다. 그러나
인젠 그렇게 되고도 싶다. 수재란 놈하고 흙덤이에 묻히어 한껍에 죽는다면
그게 오히려 날 게다.
이렇게까지 몹씨몹씨 밋웟다.
이놈 풍찌는 바람에 애끝은 콩밭 하나만 결단을 냇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낭패다 세 벌 논도 . 못 맷다. 논둑의 풀은 성큼 자란 채 어즈러히 늘려저
잇다. 이 기미를 알고 지주는 대로하엿다. 내년부터는 농사질 생각 말라고
발을 굴럿다. 땅은 암만을 파도 지수가 없다. 이만해도 다섯 길은 훨썩 넘
엇으리라. 좀 더 지펴야 옳을지 혹은 북으로 밀어야 옳을지 우두머니 망설
걸인다. 금점 일에는 푸뚤이다. 입대껏 수재의 지휘를 받아 일을 하야왓고
앞으로도 역 그러해야 금을 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칙칙한 즛은 안 한다.
“이리 와 이것 좀 파게.”
그는 어쓴 위풍을 보이며 이렇게 분부하엿다. 그리고 저는 일어나 손을 털
며 뒤로 물러슨다.
수재는 군말 없이 고분하엿다. 시키는 대로 땅에 무릎을 꿇고 벽채로 군버
력을 긁어 낸 다음 다시 파기 시작한다.
영식이는 치다 남어지 버력을 질머진다. 커단 걸때를 뒤툭어리며 사다리로
기어오른다. 굿문을 나와 버력덤이에 흙을 마악 내칠랴 할 제
“왜 또 파. 이것들이 미첫나그래 ─
산에서 나려오는 마름과 맞닥드렷다. 정신이 떠름하야 그대로 벙벙이 섯
다. 오늘은 또 무슨 포악을 드를랴는가.
“말라닌깐 왜 또 파는 게야” 하고 영식이의 바지게 뒤를 지팽이로 콱 찌
르드니 “갈아먹으라는 밭이지 흙 쓰고 들어가라는 거야. 이 미친것들아.
콩밭에서 웬 금이 나온다구 이 지랄들이야 그래” 하고 목에 핏대를 올린
다. 밭을 버리면 간수 잘못한 자기 탓이다. 날마다 와서 그 북새를 피고 금
하야도 담날 보면 또 여전히 파는 것이다.
“오늘로 이 구뎅이를 도로 묻어놔야지 낼로 당장 징역 갈 줄 알게.”
너머 감정에 격하야 말도 잘 안 나오고 떠듬떠듬 걸린다. 주먹은 곧 날아
들 듯이 허구리깨서 불불 떤다.
“오늘만 좀 해보고 고만두겟서유.”
영식이는 낯이 붉어지며 가까스루 한마디 하엿다. 그리고 무턱대고 빌엇
다.
마름은 드른 척도 안 하고 가버린다.
그 뒷모양을 영식이는 멀거니 배웅하엿다. 그러나 콩밭 낯을 드려다보니
무던히 애통 터진다. 멀정한 밭에가 구멍이 사면 풍 풍 뚫렷다.
예제없이 버력은 무데기무데기 쌓엿다. 마치 사태 만난 공동묘지와도 같이
귀살적고 되우 을씨냥스럽다. 그다지 잘 되엇든 콩포기는 거반 버력덤이에
다아 깔려버리고 군데군데 어쩌다 남은 놈들만이 고개를 나풀거린다. 그 꼴
을 보는 것은 자식 죽는 걸 보는 게 낫지 차마 못 할 경상이엇다.
농토는 모조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관절 올 밭도지 베 두 섬 반은 뭘
로 해내야 좋을지. 게다 밭을 망첫으니 자칫하면 징역을 갈는지도 모른다.
영식이가 구뎅이 안으로 들어왓을 때 동무는 땅에 주저앉어 쉬고 잇엇다.
태연무심이 담배만 뻑 뻑 피는 것이다.
“언제나 줄을 잡는 거야.”
“인제 차차 나오겟지.”
“인제 나온다” 하고 코웃음 치고 엇먹드니 조금 지나매
“이 색기.”
흙덩이를 집어 들고 골통을 나려친다.
수재는 어쿠 하고 그대루 푹 엎으린다. 그러다 뻘떡 일어슨다. 눈에 띠는
대로 고깽이를 잡자 대뜸 달겨들엇다. 그러나 강약이 부동. 왁살스러운 팔
뚝에 충겨저 벽에 가서 쿵 하고 떨어젓다. 그 순간에 제가 빼앗긴 고깽이가
정백이를 겨느고 나라드는 걸 보앗다. 고개를 홱 돌린다. 고깽이는 흙벽을
퍽 찍고 다시 나간다.
수재 이름만 들어도 영식이는 이가 갈렷다. 분명히 홀딱 쏙은 것이다.
영식이는 번디 금점에 이력이 없엇다. 그리고 흥미도 없엇다. 다만 밭고랑
에 웅크리고 앉어서 땀을 흘려가며 꾸벅꾸벅 일만 하엿다. 올엔 콩도 뜻밖
에 잘 열리고 맘이 좀 놓엿다.
하루는 홀로 김을 매고 잇노라니까
“여보게 덥지 않은가. 좀 쉬엿다 하게.”
고개를 들어보니 수재다. 농사는 안 짓고 금점으로만 돌아다니드니 무슨
바람에 또 왓는지 싱글벙글한다. 좋은 수나 걸렷나 하고
“돈 좀 많이 벌엇나. 나 좀 쵀주게.”
“벌구 말구. 맘껏 먹고 맘껏 쓰고 햇네.”
술에 건아한 얼골로 신껏 주적거린다. 그리고 밭머리에 쭈그리고 앉어 한
참 객설을 부리드니
“자네 돈버리 좀 안 할려나. 이 밭에 금이 묻혓네 금이…”
“뭐” 하니까
바루 이 산 넘어 큰 골에 광산이 잇다. 광부를 삼백여 명이나 부리는 노다
지 판인대 매일 소출되는 금이 칠십 냥을 넘는다. 돈으로 치면 칠천 원. 그
줄맥이 큰 산 허리를 뚤고 이 콩밭으로 뻗어 나왓다는 것이다. 둘이서 파면
불과 열흘 안에 줄을 잡을 게고 적어도 하루 서 돈식은 따리라. 우선 삼십
원만 해두 얼마냐. 소를 산대두 반 필이 아니냐고.
그러나 영식이는 귀담어 듣지 않엇다. 금점이란 칼 물고 뜀뛰기다. 잘되면
이어니와 못 되면 신세만 조판다. 이렇게 전일부터 드른 소리가 잇어서엇
다.
그 담날도 와서 꾀송거리다 갓다.
세재 번에는 집으로 찾어왓는데 막걸리 한 병을 손에 떡 들고 영을 피운
다. 몸이 달아서 또 온 것이엇다. 봉당에 걸타앉어서 저녁상을 물끄럼이 바
라보드니 조당수는 몸을 훌틴다는 둥 일군은 든든이 먹어야 한다는 둥 남들
은 논을 사느니 밭을 사느니 떠드는데 요렇게 지내다 그만둘 테냐는 둥 일
쩌웁게 지절거린다.
“아즈머니 이것 좀 먹게 해주시게유.”
그리고 비로소 영식이 안해에게 술병을 내놓는다.
그들은 밥상을 끼고 앉어서 즐거웁게 술을 마섯다. 몇 잔이 들어가고 보니
영식이의 생각도 저윽이 돌아섯다. 따는 일 년 고생하고 끽 콩 몇 섬 얻어
먹느니보다는 금을 캐는 것이 슬기로운 즛이다. 하로에 잘만 캔다면 한 해
줄것 공드린 그 수확보다 훨썩 이익이다. 올봄 보낼 제 비료값 품 빗해
빗진 칠 원 까닭에 나날이 졸리는 이 판이다. 이렇게 지지하게 살고 말 빠
에는 차라리 가루지나 세루지나 사내자식이 한번 해볼 것이다.
“낼부터 우리 파보세. 돈만 잇으면이야 그까진 콩은.”
수재가 안달스리 재우처 보채일 제 선뜻 응낙하엿다.
“그래보세. 빌어먹을 거 안 됨 고만이지.”
그러나 꽁무니에서 죽을 마시고 잇든 안해가 허구리를 쿡쿡 찔럿게 망정이
지 그렇지 않엇드면 좀 주저할 번도 하엿다.
안해는 안해대로의 심이 빨랏다.
시체는 금점이 판을 잡앗다. 스뿔르게 농사만 짓고 잇다간 결국 빌엉뱅이
밖에는 더 못 된다. 얼마 안 잇으면 산이고 논이고 밭이고 할 것 없이 다
금쟁이 손에 구멍이 뚤리고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때는 뭘 파
먹고 사나. 자 보아라. 머슴들은 짜위나 한 듯이 일하다 말고 훅닥하면 금
점으로들 내빼지 않는가. 일군이 없어서 올엔 농사을 질 수 없느니 마느니
하고 동리에서는 떠들석하다. 그리고 번동 포농이좇아 호미를 내여던지고
강변으로 개울로 사금를 캐러 다라난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다비신에다 옥
당목을 떨치고 히짜를 뽑는 것이 아닌가.
안해는 콩밭에서 금이 날 줄은 아주 꿈밖이엇다. 놀래고도 또 기뻣다. 올
에는 노냥 침만 삼키든 그놈 코다리(명태)를 짜증 먹어 보겟구나만 하여도
속이 메질 듯이 짜릿하엿다. 뒷집 양근댁은 금점 덕택에 남편이 사다준 힌
고무신을 신고 나릿나릿 걸는 것이 뭇척 부러웟다. 저도 얼른 금이나 펑펑
쏘다지면 힌 고무신도 신고 얼골에 분도 바르고 하리라.
“그렇게 해보지 뭐. 저 냥반 하잔 대로만 하면 어련이 잘 될라구 ─”
얼뚤하야 앉엇는 남편을 이렇게 추겻든 것이다.
동이 트기 무섭게 콩밭으로 모엿다.
수재는 진언이나 하는 듯이 이리 대고 중얼거리고 저리 대고 중얼거리고
하엿다. 그리고 덤벙거리며 이리 왓다가 저리 왓다가 하엿다. 제 따는 땅속
에 누은 줄맥을 어림하야 보는 맥이엇다.
한참을 밭을 헤매다가 산 쪽으로 붙은 한구석에 딱 스며 손가락을 펴 들고
설명한다. 큰 줄이란 번시 산운. 산을 끼고 도는 법이다. 이 줄이 노다지임
에는 필시 이켠으로 버듬이 누엇으리라. 그러니 여기서부터 파들어 가자는
것이엇다.
영식이는 그 말이 무슨 소린지 새기지는 못햇다. 마는 금점에는 난다는 수
재이니 그 말대로 하기만 하면 영낙없이 금퇴야 나겟지 하고 그것만 꼭 믿
엇다. 군말 없이 지시해 받은 곳에다 삽을 푹 꽂고 파헤치기 시작하엿다.
금도 금이면 앨써 키워온 콩도 콩이엇다. 거진 자란다 허울 멀쑥한 놈들이
삽 끝에 으츠러지고 흙에 묻히고 하는 것이다. 그걸 보는 것은 썩 속이 아
팟다. 애틋한 생각이 물밀 때 가끔 삽을 놓고 허리를 굽으려서 콩닢의 흙을
털어주기도 하엿다.
“아 이 사람아 맥적게 그건 봐 뭘 해 금을 캐자니깐.”
“아니야. 허리가 좀 아퍼서 ─”
핀잔을 얻어먹고는 좀 열적엇다. 하기는 금만 잘 터저나오면 이까진 콩밭
쯤이야. 이 밭을 풀어 논도 만들 수 잇을 것이다. 눈을 감아버리고 삽의 흙
을 아무렇게나 콩닢 우로 홱홱 내여던진다.
“구구루 땅이나 파먹지 이게 무슨 지랄들이야 ─”
동리 노인은 뻔찔 찾어와서 귀 거친 소리를 하고 하엿다.
밭에 구멍을 셋이나 뚤엇다. 그리고 대구 뚤는 길이엇다. 금인가 난장을
맟을 건가 그것 때문에 농군은 버렷다. 이게 필연코 세상이 망할려는 증조
이리라. 그 소중한 밭에다 구멍을 뚤코 이 지랄이니 그놈이 온전할 겐가.
노인은 제 물화에 지팽이를 들어 삿대질을 아니 할 수 없엇다.
“벼락 맞으니. 벼락 맞어 ─”
“염여 말아유. 누가 알래지유.”
영식이는 그럴 적마다 데퉁스리 쏘앗다. 골김에 흙을 되는 대로 내꾼지고
는 침을 탁 뱉고 구뎅이로 들어간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끈 ─
하엿다. 줄을 찾는다고 콩밭을 통이 뒤집어 놓앗다. 그리고 줄이 언제나 나
올지 아즉 깜앟다. 논도 못 매고 물도 못 보고 벼가 어이 되엇는지 그것 좇
아 모른다. 밤에는 잠이 안 와 멀뚱허니 애를 태웟다.
수재는 락담하는 기색도 없이 늘 하냥이엇다. 땅에 웅숭그리고 시적시적
노량으로 땅만 판다.
“줄이 꼭 나오겟나” 하고 목이 말라서 무르면
“이번에 안 나오거던 내 목을 비게.”
서슴지 않고 장담을 하고는 꿋꿋하엿다.
이걸 보면 영식이도 마음이 좀 뇌는 듯싶엇다. 전들 금이 없다면 무슨 멋
으로 이 고생을 하랴. 반듯이 금은 나올 것이다. 그제서는 이왕 손해는 하
릴없거니와 고만두리라든 절망이 스르르 사라지고 다시금 주먹이 쥐여지는
것이엇다.
캄캄하게 밤은 어두웟다. 어데선가 뭇 개가 요란이 짖어대인다.
남편은 진흙투성이를 하고 산에서 나려왓다. 풀이 죽어서 몸을 잘 가꾸지
도 못하고 아랫묵에 축 느러진다.
이 꼴을 보니 안해는 맥시 다시 풀린다. 오늘도 또 글럿구나. 금이 터지며
는 집을 한 채 사간다고 자랑을 하고 왓드니 이내 헛일이엇다. 인제 좌지가
나서 낯을 들고 나아갈 염의좇아 없어젓다.
남편에게 저녁을 갖다주고 딱하게 바라본다.
“인젠 꾸온 양식도 다 먹엇는데 ─”
“새벽에 산제를 좀 지낼 턴데 한 번만 더 꿰와.”
남의 말에는 대답 없고 유하게 흘개 늦은 소리뿐 그리고 들어누은 채 눈을
지긋이 감아버린다.
“죽거리두 없는데 산제는 무슨 ─”
“듣기 싫여 요망 맞은 년 같으니.”
이 호통에 안해는 고만 멈씰하엿다. 요즘 와서는 무턱대고 공연스리 골만
내는 남편이 역 딱하엿다. 환장을 하는지 밤잠도 아니 자고 소리만 뻑뻑 지
르며 덤벼들랴고 든다. 심지어 어린것이 좀 울어도 이 자식 갖다 내꾼지라
고 북새를 피는 것이다.
저녁을 아니 먹으므로 그냥 치워버렷다. 남편의 령을 거역키 어려워 양근
댁안테로 또다시 안 갈 수 없다. 그간 양식은 줄것 꾸어다 먹고 갚도 못하
엿는데 또 무슨 면목으로 입을 버릴지 난처한 노릇이엇다.
그는 생각다 끝에 있는 염치를 보째 솓아 던지고 다시 한번 찾어가는 것이
다. 마는 딱 맞닥드리어 입을 열고
“낼 산제를 지낸다는데 쌀이 있어야지유 ─” 하자니 역 낯이 화끈하고
모닥불이 나라든다.
그러나 그들은 어지간히 착한 사람이엇다.
“암 그렇지요. 산신이 벗나면 죽도 그릅니다” 하고 말을 받으며 그 남편
은 빙그레 웃는다. 온악이 금점에 장구 딿아난 몸인 만치 이런 일에는 적잔
히 속이 티엇다. 손수 쌀 닷 되를 떠다주며
“산제란 안 지냄 몰라두 이왕 지낼내면 아주 정성끗 해야 됩니다. 산신이
란 노하길 잘 하니까유” 하고 그 비방까지 깨처 보낸다.
쌀을 받아 들고 나오며 영식이 처는 고마움보다 먼저 미안에 질리어 얼골
이 다시 빨갯다. 그리고 그들 부부 살아가는 살림이 참으로 참으로 몹씨 부
러웟다. 양근댁 남편은 날마다 금점으로 감돌며 버력뎀이를 뒤지고 토록을
주서온다. 그걸 온종일 장판돌에다 갈며는 수가 좋으면 이삼 원 옥아도 칠
팔십 전 꼴은 매일 심이 되는 것이엇다. 그러면 쌀을 산다 필육을 끊는다
떡을 한다 장리를 놓는다 ─ 그런데 우리는 왜 늘 요 꼴인지. 생각만 하여
도 가슴이 메이는 듯 맥맥한 한숨이 연발을 하는 것이엇다.
안해는 집에 돌아와 떡쌀을 담구엇다. 낼은 뭘로 죽을 쑤어 먹을는지. 웃
묵에 옹크리고 앉어서 맞은쪽에 자빠저 잇는 남편을 곁눈으로 살짝 할겨본
다. 남들은 돌아다니며 잘두 금을 주서 오련만 저 망난이 제 밭 하나를 다
버려두 금 한 톨 못 주서 오나. 에, 에, 변변치도 못한 사나이. 저도 모르
게 얕은 한숨이 겨퍼 두 번을 터진다.
밤이 이슥하야 그들 양주는 떡을 하러 나왓다. 남편은 절구에 쿵쿵 빠앗
다. 그러나 체가 없다. 동내로 돌아다니며 빌려 오느라고 안해는 다리에 불
풍이 낫다.
“왜 이리 앉엇수. 불 좀 지피지.”
떡을 찌다가 얼이 빠저서 멍허니 앉엇는 남편이 밉쌀스럽다. 남은 이래저
래 애를 죄는데 저건 무슨 생각을 하고 저리 있는 건지. 낫으로 삭정이를
탁탁 죠겨서 던저 주며 안해는 은근히 훅닥이엇다.
닭이 두 홰를 치고 나서야 떡은 되엇다.
안해는 시루를 이고 남편은 겨드랑에 자리때기를 꼇다. 그리고 캄캄한 산
길을 올라간다.
비탈길을 얼마 올라가서야 콩밭은 놓엿다. 전면을 우뚝한 검은 산에 둘리
어 막힌 곳이엇다 . 가생이로 느티 대추나무들은 머리를 풀엇다.
밭머리 조곰 못 미처 남편은 거름을 멈추자 뒤의 안해를 도라본다.
“인내. 그러구 여기 가만히 섯서 ─”
실루를 받아 한 팔로 껴안고 그는 혼자서 콩밭으로 올라섯다. 앞에 쌓인
것이 모두가 흙덤이 그 흙덤이를 마악 돌아슬랴 할 제 아마 돌을 찾나 보
다. 몸이 씨러질랴고 우찔근 하니 안해는 기급을 하야 뛰여오르며 그를 부
축하엿다.
“부정 타라구. 왜 올라와 요망 맞은 년.”
남편은 몸을 고루 잡자 소리를 뻑 지르며 안해를 얼뺨을 부친다. 가뜩이나
죽으라 죽으라 하는데 불길하게도 계집년이. 그는 마뜩지않게 두덜거리며
밭으로 들어간다.
밭 한가운데다 자리를 펴고 그 우에 시루를 놓앗다. 그리고 시루 앞에다
공손하고 정성스리 재배를 커다랗게 한다.
“우리를 살려줍시사. 산신께서 거드러주지 않으면 저히는 죽을밖에 꼼짝
수 없읍니다유.”
그는 손을 모디고 이렇게 축원하엿다.
안해는 이 꼴을 바라보며 독이 뾰록같이 올랏다. 금점을 함네 하고 금 한
톨 못 캐는 것이 버릇만 점점 글러간다. 그전에는 없드니 요새로 건뜻하면
탕탕 때리는 못된 버릇이 생긴 것이다. 금을 캐랫지 뺨을 치랫나. 제발 덕
분에 고놈의 금 좀 나오지 말엇으면. 그는 뺨 맞은 앙심으로 망껏 방자하엿
다.
하긴 안해의 말 고대루 되엇다. 열흘이 썩 넘어도 산신은 깡깜 무소식이엇
다. 남편은 밤낮으로 눈을 까뒤집고 구뎅이에 뭍혀 있엇다. 어쩌다 집엘 나
려오는 때이면 얼골이 헐떡하고 어깨가 축 느러지고 거반 병객이엿다. 그리
고서 잠잣고 커단 몸집을 방고래에다 퀑 하고 내던지고 하는 것이다.
“제이미 붙을. 죽어나 버렷으면 ─”
혹은 이렇게 탄식하기도 하엿다.
안해는 밖아지에 점심을 이고서 집을 나섯다. 젖먹이는 등을 두다리며 좋
다고 끽끽어린다.
인젠 힌 고무신이고 코다리고 생각좇아 물렷다. 그리고 금 하는 소리만 드
러도 입에 신물이 날 만큼 되엇다. 그건 고사하고 꿔다 먹은 양식에 졸리지
나 말엇으면 그만도 좋으리마는.
가을은 논으로 밭으로 누 ― 렇게 나리엇다. 농군들은 기꺼운 낯을 하고
서루 만나면 흥겨운 농담 . 그러나 남편은 앵한 밭만 망치고 논좇아 건살 못
하얏으니 이 가을에는 뭘 걷어드리고 뭘 즐겨할는지. 그는 동리 사람의 이
목이 부끄러워 산길로 돌앗다.
솔숲을 나서서 멀리 밖에를 바라보니 둘이 다 나와 있다. 오늘도 또 싸운
모양. 하나는 이쪽 흙뎀이에 앉엇고 하나는 저쪽에 앉엇고 서루들 외면하야
담배만 뻑뻑 피운다.
“점심들 잡숫게유.”
남편 앞에 박아지를 나려놓으며 가만히 맥을 보앗다.
남편은 적삼이 찟어지고 얼골에 생채기를 내엇다. 그리고 두 팔을 것고 먼
산을 향하야 묵묵히 앉엇다.
수재는 흙에 밖혓다 나왓는지 얼골은커녕 귓속드리 흙투성이다. 코밑에는
피딱지가 말라붙엇고 아즉도 조곰식 피가 흘러나린다. 영식이 처를 보드니
열적은 모양. 고개를 돌리어 모로 떨어치며 입맛만 쩍쩍 다신다.
금을 캐라닌까 밤낮 피만 내다 말라는가. 빗에 졸리어 남은 속을 복는데
무슨 호강에 이 지랄들인구. 안해는 못마땅하야 눈가에 살을 모앗다.
“산제 지난다구 꿔온 것은 은제나 갚는다지유 ─”
뚱하고 있는 남편을 향하야 말끝을 꼬부린다. 그러나 남편은 눈섭 하나 까
딱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조를 좀 돋으며
“갚지도 못할 걸 왜 꿔오라 햇지유” 하고 얼주 호령이엇다.
이 말은 남편의 채 가라앉지도 못한 분통을 다시 건디린다. 그는 벌떡 일
어스며 황밤주먹을 쥐어 창낭할 만치 안해의 골통을 후렷다.
“게집년이 방정맞게 ─”
다른 것은 모르나 주먹에는 아찔이엇다. 멋없이 덤비다간 골통이 부서진
다. 암상을 참고 바르르하다가 이윽고 안해는 등에 업은 언내를 끌러 들엇
다. 남편에게로 그대로 밀어 던지니 아이는 까르륵하고 숨 모는 소리를 친
다.
그리고 안해는 돌아서서 혼잣말로
“콩밭에서 금을 딴다는 숭맥도 있담” 하고 빗대놓고 비양거린다.
“이년아 뭐.” 남편은 대뜸 달겨들며 그 볼치에다 다시 올찬 황밤을 주엇
다. 적으나면 게집이니 위로도 하야주련만 요건 분만 폭폭 질러노려나. 예
이 빌어먹을 거 이판새판이다.
“너허구 안 산다. 오늘루 가거라.”
안해를 와락 떠다밀어 논뚝에 제켜놓고 그 허구리를 발길로 퍽 질럿다. 안
해는 입을 헉 하고 벌린다.
네가 허라구 “ 옆구리를 쿡쿡 찌를 제는 은재냐 요 집안 망할 년.”
그리고 다시 퍽 질럿다. 연하여 또 퍽.
이 꼴들을 보니 수재는 조바심이 일엇다. 저러다가 그 분풀이가 다시 제게
로 슬그머니 옳마올 것을 지르채엇다. 인제 걸리면 죽는다. 그는 비슬비슬
하다 어는 틈엔가 구뎅이 속으로 시납으로 없어저 버린다.
볕은 다스로운 가을 향취를 풍긴다. 주인을 잃고 콩은 무거운 열매를 둥글
둥글 흙에 굴린다. 맞은쪽 산 밑에서 벼들을 비이며 기뻐하는 농군의 노래.
“터젓네, 터저.”
수재는 눈이 휘둥그렇게 굿문을 튀어나오며 소리를 친다. 손에는 흙 한 줌
이 잔뜩 쥐엇다.
“뭐” 하다가
“금줄 잡앗서 금줄.” “으ㅇ” 하고 외마디를 뒤 남기자 영식이는 수재
앞으로 살같이 달려드렷다. 헝겁지겁 그 흙을 받아 들고 샃샃이 헤처보니
따는 재래에 보지 못하든 붉으죽죽한 황토이엇다. 그는 눈에 눈물이 핑 돌

“이게 원줄인가.”
“그럼. 이것이 곱색줄이라네. 한 포에 댓 돈식은 넉넉 잡히되.”
영식이는 기뿜보다 먼저 기가 탁 막혓다. 웃어야 옳을지 울어야 옳을지.
다만 입을 반쯤 벌린 채 수재의 얼골만 멍하니 바라본다.
“이리 와 봐. 이게 금이래.”
이윽고 남편은 안해를 부른다. 그리고 내 뭐랫서 그러게 해보라구 그랫지
하고 설면설면 덤벼 오는 안해가 항결 어여뻣다. 그는 엄지가락으로 안해의
눈물을 지워주고 그리고 나서 껑충거리며 구뎅이로 들어간다.
“그 흙 속에 금이 있지요.”
영식이 처가 너머 기뻐서 코다리에 고래등 같은 집까지 연상할 제
수재는 시원스러히
“네. 한 포대에 오십 원식 나와유 ─” 하고 대답하고 오늘밤에는 꼭 정
연코 꼭 다라나리라 생각하엿다. 거즛말이란 오래 못 간다. 뿡이 나서 뼉따
구도 못 추리기 전에 훨훨 벗어나는 게 상책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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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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