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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11

현진건 빈처 빈처 현진건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 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 푼 나는 데는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器具)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典當局倉庫)에 들이밀거나 고물상 한구 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 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라.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후 - 한숨을 내쉬었다. 봄은 벌써 반이나 .. 2020. 4. 5.
현진건 고향 고향 그의 얼굴 현진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 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막 격으로 ‘기모노’를 둘 렀고 그 안에선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 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 로 지은 것이었다. 그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 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 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 이었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로 곧잘 철 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2020. 4. 4.
김동인 약한 자의 슬픔 약한 자의 슬픔김동인1가정교사 강 엘리자베트는 가르침을 끝낸 다음에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이제껏 쾌활한 아이들과 마주 유쾌히 지낸 그는 찜찜하고 갑갑한 자기 방에 돌아와서는 무한한 적막을 깨달았다.‘오늘은 왜 이리 갑갑한고? 마음이 왜 이리 두근거리는고?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 있는 것 같군. 어찌할꼬. 어디 갈까. 말까, 아. 혜숙이한테나 가보자. 이즈음 며칠 가보지도 못하였는데.’그의 머리에 이 생각이 나자, 그는 갑자기 갑갑하던 것이 더 심하여지고 아무래도 혜숙이한테 가보여야 될 것같이 생각된다.“아무래도 가보여야겠다.”그는 중얼거리고 외출의를 갈아입었다.‘갈까? 그만둘까?’그는 생각이 정키 전에 문 밖에 나섰다. 여학생간에 유행하는 보법(步法)으로 팔과 궁둥이를 전후좌.. 2018. 7. 5.
김유정 동백꽃 김유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 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르득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 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은 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 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 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 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득 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어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2018. 7. 3.
현진건 운수좋은날 운수 좋은날 현진건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 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 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 시는 앞집 마마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東光 學校)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전 , 둘째 번에 오십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 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 하고.. 2018.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