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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23

채만식 치숙 치숙(痴叔) 채만식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 걸리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 머, 말두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신세 간 데 없지요. 자, 십 년 적공,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 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간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감고 드러누웠군요. 재산이 어디 집 터전인들 있을 턱이 있나요. 서발 막대 내저어야 짚검불 하나 걸리는 것 없는 철 빈(鐵貧)인데. 우리 아주머니가, 그래도.. 2020. 4. 10.
현진건 빈처 빈처 현진건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 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 푼 나는 데는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器具)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典當局倉庫)에 들이밀거나 고물상 한구 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 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라.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후 - 한숨을 내쉬었다. 봄은 벌써 반이나 .. 2020. 4. 5.
현진건 고향 고향 그의 얼굴 현진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 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막 격으로 ‘기모노’를 둘 렀고 그 안에선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 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 로 지은 것이었다. 그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 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 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 이었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로 곧잘 철 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2020. 4. 4.
채만식 미스터방 미스터 방 채만식 주인과 나그네가 한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은 미스터 방(方), 나그네는 주인의 고 향 사람 백(白)주사.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 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뭐, 흰말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 며, 날 괄시헐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를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 부리, 왼편으로 삼십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 해가면서 그래 쌓는 것이었었다. “내.. 2020. 4. 2.
봄봄 김유정 봄 봄 김유정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 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 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 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그만 벙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 2020.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