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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23

김유정 가을 가을 김유정 내가 주재소에까지 가게 될 때에는 나에게도 다소 책임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고처 생각해봐도 나는 조곰치도 책임이 느껴지지 안는 다 복만이는 제 안해를 (여기가 퍽 중요하다) 제손으로 즉접 소장사에게 팔 은것이다. 내가 그 안해를 유인해다 팔았거나 혹은 내가 복만이를 꼬여서 서루 공모하고 팔아먹은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우리 동리에서 일반이 다 아다싶이 복만이는 뭐 남의 꼬임에 떨어지거나 할 놈이 아니다. 나와 저와 비록 격장에 살고 숭허물없이 지내는 이런 터이 지만 한번도 저의 속을 터말해본 적이 없다. 하기야 나뿐이랴 어느 동무구 간 무슨 말을 좀 뭇는다면 잘해야 세마디쯤 대답하고 마는 그놈이다. 이렇 게 구찮은 얼골에 내천짜를 그리고 세상이 늘 마땅치않은 그놈이다 오즉 하 .. 2020. 6. 17.
김유정 따라지 따라지 김유정 쪽대문을 열어 놓으니 사직공원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인제는 봄도 늦었나 보다. 저 건너 돌담 안에는 사쿠라꽃이 벌겋게 벌어졌다. 가지가지 나 무에는 싱싱한 싹이 돋고, 새침히 옷깃을 핥고 드는 요놈이 꽃샘이겠지. 까치들은 새끼 칠 집을 장만하느라고 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들고……. 이런 제기랄, 우리집은 언제나 수리를 하는 겐가. 해마다 고친다, 고친다, 벼르기는 연실 벼르면서. 그렇다고 사직골 꼭대기에 올라붙은 깨웃한 초가집이라서 싫은 것도 아니다. 납 작한 처마 밑에 비록 묵은 이엉이 무더기 무더기 흘러내리건 말건, 대문짝 한 짝이 삐뚜로 박히건 말건, 장독 뒤의 판장이 아주 벌컥 나자빠져도 좋다. 참말이지 그놈의 부엌 옆의 뒷 간만 좀 고쳤으면 원이 없겠다. 밑둥의 벽이 확 나가서 어떤.. 2020. 6. 15.
김유정 두꺼비 두꺼비 김유정 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혹 시험 전날 밤새는 맛에 들렸는지 모른다. 내일이 영어시험이 므로 그렇다고 하룻밤에 다 안다는 수도 없고 시험에 날 듯한 놈 몇 대문 새겨나 볼까, 하 는 생각으로 책술을 뒤지고 있을 때 절컥, 하고 바깥벽에 자전거 세워 놓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행길로 난 유리창을 두드리며, 이상, 하는 것이다. 밤중에 웬놈인가 하고 찌뿌둥히 고리를 따보니 캡을 모로 눌러 붙인 두꺼비눈이 아닌가. 또 무얼, 하고 좀 떠름했으나 그래 도 한 달포 만에 만나니 우선 반갑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어서 들어오슈, 하니까 바 빠서 그럴 여유가 없다 하고 오늘 의논할 이야기가 있으니 한 시간쯤 뒤에 저의 집으로 꼭 좀 와주십시오, 한다. 그뿐으로 내가 무슨 의논일까, 해서 얼떨떨할 .. 2020. 5. 31.
김동인 배따라기 배따라기 김동인 좋은 일기이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 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고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추 뭉글뭉글 엉기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 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뒹굴고 있었다. * 이날은 삼월 삼질, 대동강에 첫 뱃놀이하는 날이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놀잇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부드러운 봄공기를 흔들면서 날아온다... 2020. 5. 25.
김동인 광염 소나타 광염 소나타 김동인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 은 사십 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 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 르겠다, 가능성뿐은 있다―---이만치 알아두면 그만이다. 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백성수(白性洙)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 하여도 좋을 것이요 짐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胡某)나 기무라모(木村某) 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 하는 동물을 주인공삼아 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 겨난 일인 줄만 알면……. 이러한 전제로써,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 “기회(찬스)라 하는 .. 2020. 5. 23.
김유정 금 따는 콩밭 금 따는 콩밭 김유정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리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거츠로 황토 장벽으로 앞뒤좌우가 콕 막힌 좁직안 구뎅이. 흡사히 무덤 속 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브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 에 자욱하다. 고깽이는 뻔찔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히 나려쪼며 퍽 퍽 퍽 ─ 이렇게 메떠러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하고 벽이 헐린다. 영식이는 일손을 놓고 소맷자락을 끌어당기어 얼골의 땀을 훌는다. 이놈의 줄이 언제나 잡힐는지 기가 찼다. 흙 한 줌을 집어 코밑에 바짝 드려대고 손가락으로 삿삿이 뒤저본다. 완연히 버력은 좀 변한 듯싶다. 그러나 불퉁 버력이 아주 다 풀린 것도 아니엇다. 말똥버력이라야 금이 온다는데 왜 이 리 안 나.. 2020. 5. 19.